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도전(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문단 편집) === 제10회 === * 1380년으로 5년이나 타임슬립하다보니 신진사대부들의 중앙정계 복귀, 지윤과 우왕의 유모 장씨의 숙청이라던가 최영의 홍산대첩, 염흥방의 변절과정, 왜구의 수도 개경 위협을 두고 이인임과 최영간 천도를 두고 벌어진 대립, 정몽주의 일본 사신 파견, 이인임에 의해 우왕의 스승으로 임명된 이색, 경복흥의 탄핵 이후 사망과정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죄다 생략되었다. 다만 명덕태후 승하는 대충이나마 그려낸듯. 경복흥의 사망은 내레이션으로 나오고, 정몽주의 일본 사신 파견은 이인임이 그를 조전원수로 보내려할 때 대사로 언급되었다. 문하시중 경복흥이 축출된 뒤 이인임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여전히 수시중이라고 불리고 있다. [[진포해전]]은 간단히 내레이션으로 최무선, 나세가 이겼다는 정황이나 승전 장계로 언급되는 수준에서 그쳤고 대신 미니다큐에서 군산시 진포해양테마공원을 다루면서 조명하였다. 여기서 생략된 사건들은 주인공인 정도전과 연결하기가 어렵다는 이유가 큰 것으로 보인다. * 작중에선 정몽주가 이색에게 '삼봉이 유배지에 있은지는 6년이요 나주에서 영주로 옮겨간것'이라는 말하는것이 나오고 이후 정몽주가 이성계에게 가는 조건으로 정도전의 경외종편[* 해배되는대신 도성에서 살 수는 없는것.]을 언급하는데 실제 역사에서 가평부곡에서 약 2년을 보낸 정도전은 우왕 3년 고향인 영주에 가서 생가인 삼봉(지금의 충청북도 단양군)을 왕래하면서 4년을 지내다가 그 후 유배가 완화되어 사면하여 편의대로 거주지를 선택하게 하자 삼각산과 부평 등을 전전하며 후학을 기르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성계와 정몽주가 황산에서 왜구와 싸우고 있을 무렵이면 정도전은 아직 영주에 있어야 한다. 작중에서 왜구 침입으로 인해 난민신세로 떠돌게 된 것은 정도전과 이성계, 정몽주와의 관계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각색으로 보인다. * 이성계의 경우도 그런데 우왕 3년(1377년) 왜구가 강화도까지 침범하자 조정은 이성계와 변안열 등을 부장으로 임명하여 경기도통사가 된 이인임의 지휘를 받도록 했었다. 이때 6도도통사로 군을 지휘한 것이 최영이며 1377년은 최영의 홍산대첩 다음해였다. 이성계는 황산대첩이 있기 전에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왜구와 맞서 싸웠는데 본작은 이성계가 함주에만 머물러 있다가 강씨의 꾀병으로 개경에 올라온다는 설정으로 역사와 맞지 않는다. 애시당초 우왕 초기 왜구의 칩입은 고려가 국운을 걸고 싸워야 할 만큼 치열했는데 그 6년의 세월을 다 까먹다 보니 이성계가 함주에서 태평한 세월을 보내는 꼴이 되었다(...). 그래도 1380년으로 건너뛰기 전에 나주의 왜구를 이성계가 토벌하는 장면이 나왔으니 역사를 아주 무시한 건 아니다. * 황산대첩에 중요한 인물이 빠졌는데 당시 아버지를 따라 여러 전장에 종군했고 황산대첩 당시에도 아버지와 같이 싸운 젊은 시절의 [[이방과]]가 등장하지 않는다. * 작중 [[아기발도]]가 고려 조정에 개경을 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서신을 보내는데 이 자체는 실제 사실이 아니나 당시 왜구의 세력은 엄청나게 강하여 남원성 전투 당시 아기발도가 '''"장차 광주의 금성(金城)에서 말을 먹여 북으로 올라가겠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는 얘기가 전한다. 그만큼 사근내역 전투 이후 왜구의 기세가 등등하였다. * 남원성에 있던 배극렴이 새파란 부원배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며 불만을 가지다, 이성계가 먼저 다가가 고개를 숙여, 배극렴이 호의적인 태도로 바뀌게 되는데 배극렴이 이성계보다 10살 연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있었을 법한 일이다. 훗날 배극렴이 국새를 들고 가서 이성계의 즉위를 청하고 1등공신이 되는 만큼, 불만을 가지던 이도 감화시키는 이성계의 모습을 위한 픽션으로 보인다. * 작중 고려군은 여러 명의 원수가 등장하는데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 시기 원수란 원래는 유사시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징발하기 위한 임시기구였다. 그러다 공민왕 이후 많은 전란을 겪으며 점차 상설화되기 시작했다. 개인이 원수직을 계속 맡으며 해당 지역이 원수 개인에 예속되어갔다. 더구나 여러 원수가 동시에 한 지역에 임명됨에 따라 지휘체계의 혼선마저 불러왔다. 여러 원수들을 배치하여 전투에 동원하는 것 역시 각 원수가 보유한 전력을 전장에서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앙의 정규군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성계의 경우엔 원래 동북면의 독립세력에 가까워서 그 자신이 가진 정예사병이 원래 있긴 했다. * 왜구들이 세워둔 깃발에 [[오토모]], [[모리]], [[호조씨|호조]] 등이 있는데, 오토모 가문이야 큐슈의 대영주니 그렇다 치더라도 모리 가문은 이 당시 [[주고쿠]] 지방 [[아키]]의 소영주였다. 작중 호죠가의 미츠노우로코 문장을 후호조씨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으나 가마쿠라 막부시대의 싯켄가인 호조씨도 똑같은 문장을 썼다. 시대상으로 모두 등장은 가능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